코로나로 재택근무가 길어지며, 나는 코로나 블루보다 더 무서운 재택 블루를 견디지 못하고. 주에 한 번 사무실 출근을 신청했다. 신기하게도 하루 사무실로 나가는 건데도, 외출의 힘일까. 재택 블루는 사라졌다. 주말이면 성당 청년 활동이나 또는 가족들과의 외출 등이 줄어드니, 일주일에 주 7일 집에만 있는 것 같아 많이 답답했었다. 다시 한 번, 나는 외출형 인간이구나 깨닫는 시간이기도 하고.
주 1회 사무실 출근으로 재택 블루를 물리친 것 같은 날이었다. 출근하여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컴퓨터 전원을 켜는 것이다. 그런데 띠리리... 본체가 나갔다. 재시작을 해도, 안전모드로 진입을 시도해도. 어느 것도 먹지 않았다. 결국에는 도움을 요청하여 문제를 해결해 보려 했지만. 모두가 재택 중인 회사에 나와있는 상황이라 적절한 상황 파악과 해결 방안을 찾는 것이 어려웠다. 오전의 반을 묵묵부답이 되어버린 본체와 씨름하며 보냈다. 그리고 간신히 다른 컴퓨터에서 급히 오전 업무를 처리했다. 일을 무슨 정신으로 했는지, 흔히 말하는 밥을 입으로 먹는지 코로 먹는지 모를 상황이었다. 그리고 점심시간. 나는 그대로 off 모드로 쉬고 싶었지만. 점심 먹으러 가기 전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내 자리 본체 전원을 넣었다.
띠로리. 나 불렀엉? 하는 듯, 윈도우가 열렸고 오전 내내 그렇게도 보고 싶던 내 바탕화면이 까꿍 하며 나타났다. 월요병 요정에게 홀리기라도 한듯, 내 본체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작동했다. 그대로 자리에 앉아 오전에 처리 못한 몇 가지 일을 간단히 더 확인하고 밖으로 나갔다. 짬으로 남은 점심시간 회사 근처 걷고 와얄 것 같아서 였다. 오전 내내 벽보고 속앓이 하느라 타들어 갔던 속을 식혀야 하니까.
본체가 켜질 거라는 생각을 하고 전원을 켠 것은 아니었다. 완전한 고장으로 도장을 찍기 전에, 최종 검수의 느낌으로 한 번 더 전원을 넣었을 뿐이었다. 요즘 내 일상에 빗대어 보니 사는 것도 그와 같다. 마음이 힘들어 견디지 못할 때, 그게 다가 아니라는 듯 까꿍 하며 봄이 왔으니까. 여기가 끝이라고 느껴진다면 그 끝을 받아들이고, 마지막으로 '한 번만' 끝을 밀어내보자. 느닷없이 무언가 까꿍하며 나타나 빛을 비춰 주거나 또는 새 문을 열어주거나 아니면 이와 같이 전원이 들어올 지도 모르니까.
까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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