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째 회사 컴퓨터가 말썽이다. 그래서 잠시 재택근무도 접고 사무실로 내리 출근을 했다. 이전에는 당연했던 그 길이 매일 이어진다는 것이 새삼 낯설게 느껴졌다. 코로나가 끝나면 세상이 바뀔거라는 말을 믿지 않았지만, 어쩌면 미묘하고 섬세한 지점으로는 조금씩 변화되어 있을 것 같다. 금요일 출근길, 지하철이 연착되었다. 비교적 출근시간보다 이르게 집을 나서는 편이라 오는 전철을 한두 대 정도는 보내고 타도 지각 없는 무던한 출근시간이다. 그러나 지하철역에 도착하니 한정거장 걸러 하나씩 서 있어야 할 지하철 안내가 없다. 이건 출근길 연착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이것은 지하철에 사람이 많을 거라는 뜻이다.
늘 이르게 출근을 하는 건 빽빽하게 사람이 많은 것이 싫어서 였다. 모든 직장인들은 같은 마음일 것이다. 지옥철이라 불리는 사람 많은 시간대와 또 연착에도 지각하지 않을 적당한 출근 시간대를 찾아 출근하는 것이 직장인 노하우라면 노하우일 것이다. 지하철을 한 대 보내고 또 다음 것도 보내기로 하고 한 걸음 물러 서 있었다. 두 대를 보내고 이제 사람이 좀 없겠지 하는 생각으로 지하철 탑승 줄을 섰다. 그리고 지하철 현황 전광판을 보려 고개를 드니. 웬걸. 승강장에는 사람이 빼곡했다.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두 대 정도 더 보내면 사람이 많지 않을 것 같은데, 그러면 출근시간이 아슬아슬해 질 것 같았다. 현재 지하철이 연착되어 오고 있다는 것도 초조함에 한 몫을 더 했다. 초조해지기 시작해서인지 아니면 빠른 판단을 내려야 할 촌각을 다툴 일이어선지. 출근길 현명한 선택에 대한 압박은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게 했다. 코로나로 인해 연이어진 재택 근무로 오랜만에 겪는 출근길 지하철 연착 상황이라. 빠른 판단이 서질 않았다. 그날은 노트북도 챙겨 출근한 터라 커다란 백팩이 빼곡한 지하철에 타길 더욱 망설이게 만들었다.
이런 거, 저런 거 상황이 엉키고 꼬이는 날이 있다. 하필 노트북을 챙겨 백팩을 매고 출근하는 날 지하철은 연착되고 승강장에 밀려드는 사람들은 도무지 줄어들 기미가 없다. 두어 대 보내고 나면 연착 상황이 풀리기도 하는데, 그런 날은 꼭 이어지는 연착이 야속하기만 하다. 빼곡한 사람들 틈에 끼어 타고 싶은 마음이 추호도 없는 내 고집이 더 야속하기만 하다. 그러나 결국 사람은 자기답게 결정하고, 살아가는 것 아닐까. 나는 몇 대의 전철을 더 보내도 될지 마지노선을 정했다. 몇 분까지는 전철을 보내고, 그 시간에는 어떤 전철이 와도 무조건 타자. 지각을 하지 않을 시간까지 전철을 보내기로 한 것이다. 전철을 보내면서도 마음은 초조했다. 애꿎은 검색창에 '지하철 연착'을 검색해본다. 나의 출근길은 어떻게 되었을까.
발뒤꿈지를 들이밀며 탑승해야 했던 몇 대를 보내고 나니, 그나마 서로 자기 팔짱을 끼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서 있을 수 있는 정도의 전철이 왔다. 나는 백팩을 앞으로 매고 지하철에 탑승했다. 당연히 지각하지 않았다. 어쩌면 나는 지각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다. 지난 몇 년 간 같은 전철을 타고 출근을 하며 연착을 겪었지만 지각한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연착 상황이 오면 늘 마음은 초조해지고 애꿎은 검색만 해보게 된다.
평정심. 그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나의 평정심은 지하철 한두 대를 보낼 정도까지인 것 같다. 매번 겪는 연착의 상황에서 나는 매번 한두 대 보내고 나면 시간을 정하고, 검색을 했으니까. 내일은 연착이 없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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