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길 강남역까지 걸을 때는 두 가지 경우의 마음일 때이다. 하나는 풀리지 않는 것이 있을 때. 또 하나는 풀어야 할 것이 있을 때. 또는 두 가지 모두 있을 때도 있다. 퇴근 길 한 정거장 정도를 걸었다. 회사로 갑갑해진 마음 좀 풀어야겠어서 말이다. 정말 딱 한 정거장 정도 걸으면 풀릴 마음이었다. 카드를 찍고 지하철 개찰구를 통과할 때,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금방 끊어질 전화가 아닐 것 같아서 다시 지하철을 나왔다. 그리고 선선한 바람과 함께 한 정거장을 더 걸었다. 통화를 끊고보니 강남역. 곧바로 지하로 들어가고 싶지 않아 강남대로를 크게 한 바퀴 돌았다.
풀리지 않는 마음이나 일도 걸으면 서서히 풀렸다. 워킹화를 신고 가벼운 트레킹 복장을 하며 본격적으로 걷는 것은 아니지만, 강남 대로 넓고 큰 길만 한 정거장 걸어도 푸쉬쉬 마음은 가라앉았다.
풀어야 할 마음이나 일도 걸으면 하나둘 방편이 떠올랐다. 정리정돈이 되는 것 같다고 할까. 멈춰서 고인 듯 생각에 빠져 있는 것보다 훨씬 편안하고 좋은 일이 걷기인 것 같다.
풀리지 않든, 풀어야 하든. 어쨋든 엉킨 무언가가 가슴에 들어차 있을 때 걷기는 만병통치약이다. 실마리를 꽉 잡아당겨 부여잡고 있어봐야 엉킨 실타래만 단단해질 뿐이다. 일정한 보폭으로 걸으면, 살살 구슬르듯 마음의 실타래는 느슨해지고. 그렇게 느슨해지면 실마리의 엉킨 매듭을 금세 찾을 수 있게 된다. 너무 꽉 엉킨 것은 싹뚝 잘라버리는 게 제일 낫지만. 대부분의 마음은 적당한 걷기면 다 풀리니.
퇴근 길 두 정거장, 강남역까지 걷기는 아주 좋은 마음 코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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