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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이 지금

참 행복한 언니(068)

by 혜.리영 2021. 5. 29.


나에게는 동생이 둘 있다. 하나는 나와 가까운 터울이고 하나는 차이가 좀 나는 터울이다. 휴대전화 주소록에 저장된 이름 앞에 동생1, 동생2 이렇게 붙였다. 동생이 하나가 아니라 둘이나 되니 그렇게 붙여놓은 것이다. 그러다보니 생긴 버릇이 어디서든 '동생들'이라고 말하기보다 '동생둘'이라고 한다. '동생들 만났어'가 아니라 '동생둘 만났어'라고 하는 것이다. 큰 차이를 가진 말은 아니어서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진 않아 '동생둘'이라고 버릇이 들었다.

한 번은, 동생둘과 단톡에서(동생들과 함께 있는 단톡방 이름도 동생둘 이다) 지난 대화를 언급하며 대화창을 캡쳐해서 보냈다. 캡쳐된 이미지에는 내가 저장한 동생들의 저장명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동생1, 동생2' 이것을 보고 막내가 정없다며 숫자 떼고 그냥 동생이라고 하라고 했다. 동생1, 동생2는 정없어 보이긴 해도 나만의 애칭이었다. 나는 가끔 사람들의 이름을 나만의 애칭으로 부르곤 한다. 대부분 상대의 동의 없이 나만의 애정과 친근함을 담아 부르는 애칭이다. 그래도 당사자의 요청이니 들어줘야지. 숫자를 떼고 '동생'이라고만 해두니 이번에는 내가 정없게 느껴졌다. 그래서 이번에는 '내동생'이라고 붙였다. 하나 둘 구호를 붙이진 않았지만. 둘다 사랑하는 내 동생 이니까.

내가 사는 곳 근처에 볼일이 있어 점심 때 둘째 동생이 오기로 했다. 마침 시간이 맞아 막내도 오고. 나는 금쪽같은 점심시간을 동생들과 보내기로 했다. 재택 근무를 하는 날이면 잠옷바람으로 앉아 일하기 일쑤인데. 그날은 미리미리 씻고 외출준비를 마쳤다. 점심시간이 시작되자마자 미리 약속해둔 식당으로 갔다. 나는 며칠 전 뭉터기로 산 행주를 동생둘에게 나눠줬다. 행주와 함께 맛밤과 건강쥬스 에이드도 함께. 그러자 둘째가 가방에서 멜론두유를 꺼내 막내와 나에게 주었다. 최근에 산 건데 맛있어서 챙겨왔다는 것이다. 둘째는 커다란 숄더백에 항상 나눠줄 작은 주전부리를 챙겨나온다. 주거니 받거니 나누는 사이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늘 그렇듯 우리는 대화 없이 맛있게 먹었다. 자매끼리는 이렇다. 아니 우리 자매는 이렇다. 음식 앞에서 대화란 사치다. 셋 이상의 형제자매를 가진 사람은 알 것이다. 지체하는 순간 내 몫의 간식이 없어진다. 이렇게 버릇이 든 우리는 종종 셋이 모여 식당을 가도, 여행을 가도, 집에서도. 밥을 먹을 때면 각자 먹기 바빴다. 이제는 다 컸다고, 각자 자기 몫의 식사를 하면서도, 서로 더 먹을래, 반찬 이거 맛있어 하며 무심하게 말을 건냈다.

식사를 마치고 근처 카페로 갔다. 나는 음료만 받아 다시 근무를 하러 들어가야 할 참이었다. 짧지만 동생둘과 만나는 일은 행복하다. 당연한 일상이라 행복하다. 꼰대 같은 언니가 되어가지만. 그래도 사랑하는 동생둘이 쫑알거리며 옆에 있어줘서 마음이 따뜻했다. 이렇게 좋은 동생이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있으니, 참 행복한 언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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