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오래된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벨이 울리고 뒤늦게 받은 전화였는데, 전화기를 귀에 대는 순간 건너편에서 친구의 혼잣말이 들려온다. '자나? 안 받네' 누구와 함께 있는 것 같지만 혼자다. 서울을 떠나 멀리 사는 친구의 전화에 기운이 다 빠진 내 목소리가 조금씩 살아난다.
전화를 건 친구의 용건은, 나의 안부도 본인의 안부도 아니었다. '언제 올거야' 서울을 떠나 바닷가 도시에 자리를 잡은 친구는 누구도 왔고 했는데 너는 언제 올거냐는 말을 다짜고짜 꺼냈다. 늘 다짜고짜 본론부터 들이미는 친구이다. 나는 허허 웃으며 요즘 내 일상을 늘어 놓는다. 회사가 빡세다, 코로나가 기승이다, 답답하고 갑갑하다 등. 오래된 재택 근무가, 오래된 코로나 시국이, 오래된 서울 살이가 힘들다 말하면서도. 친구가 부르는 바닷가 도시로 가지 못하는 이유를 나는 자꾸 대고 있었다. 그리고 끝내 '나는 도시 태생이잖아, 아스팔트가 제일 좋아'라고 말해버렸다.
이제 친구에게는 일상이 된 바닷가 근처의 삶을, 친구는 나에게 말하지 않았다. 바다가, 하늘이, 동네가. 이런 말들을 하지 않았다. 내내 '언제 올거야' 그것만 물었다. 생각해보면 무엇에든 그런 친구였다. 앞뒤 없이, 인사말 없이 훅 들어오는 본론 같은. 그런 눈빛과 대화법을 가진 친구이다. 그 말에 나는 자꾸 이리저리 피하고 있었다. 마음은 가고 싶지만, 나는 자꾸 핑계를 대고 있었다.
서울의 나는 그렇다. 마음의 충동질보다 해야하는 것, 할 일, 해내야 하는 것 등을 먼저 헤아리고 있다. 꼬따오 작은 섬으로 한 달 살이를 다녀온 후, 나의 일기장에는 이런 글이 쓰였다. '벗어두었던 서울의 나를 하나둘 줏어 입었다' 그 후로 벌써 4년. 다시 서울내기가 되었고, 전보다 더 서울에 얽매였다.
'진짜 너네 집 가면 다시 꼬따오의 하루를 살 수 있겠다. 일 마치면 바로 바다가서 노을지는 거 보고 오고. 따오에서는 퇴근하면 바로 바다가서 노을 보고, 저녁 먹고 마시지 받고 다시 집으로 오는 하루였는데' 친구는 부내나는 마사지는 없지만, 그래도 오라고 했다. 자꾸 오라고 했다.
서울의 나는 마음이 자꾸 작아져서, 옹졸한 나만 남아 버렸다.
친구의 집에 바로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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