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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이 지금

그러니까 괜찮지(098)

by 혜.리영 2021. 6. 27.


만나면 마음이 자유로운 사람이 있다. 누구나 가리는 것이 있고 또 무방하게 넘어가는 면이 있을 것이다. 그런 지점이 맞는 사람과 있으면 편안하고 즐거워 지는 것이다. 지인 결혼식을 마치고 친한 친구와 친한 동생과 같이 만났다. 가보고자 한 을지로 식당은 이른 저녁부터 줄지어 늘어선 사람들로 우리는 발길을 돌렸다. 힙한 곳이구나 확인하며 황급히 발길을 돌린 것이다.

서로 배고프냐 괜찮냐 옥신각신 하다가, 종종 가던 음식점으로 함께 들어갔다. 이른 저녁 우리는 음식을 먹었고, 나는 와인 한 잔을, 친구들은 스트라이프와 맥주를 각각 마셨다. 요즘은 뭘 해도 오랜만이다. 오랜만에 외식과 오랜만에 밖에서 마시는 와인 한 잔. 마음이 금세 풀어졌다. 와인이 아니어도 이들 앞에서는 늘 마음이 쉽게 풀어진다.

자리를 옮겨 다시 와인을 마시기로 했다. 힙지로라 불리는 을지로에는 가벼운 한 잔 즐길 수 있는 와인바가 많이 있다. 마침 사람이 없었고 우리는 자리를 잡고 주문을 했다. 이번에는 포트 와인. 좋아하는 포트 와인에 풀어진 마음이 더욱 느슨해졌다. 많은 대화가 오고갔고, 나의 목소리도 커져갔다. 헛소리 같은 말도 나오고, 속얘기 같은 말도 나오고. 그런데 기분이 좋았다. 가벼이 마시는 술 때문이었을까. 풀어져도 괜찮을 친구들 덕분이었을까. 마음은 자꾸 풀어지고, 그냥 좋았다.

어느 누구도 힘들다, 괴롭다는 얘기 없이 우리는 서로의 지금에 대해 얘기했다. 각자 자신의 지금을 얘기하고 그것은 서로의 지금이 되기도 했다. 다시 그 날을 돌이켜 봐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진 저녁이었다. 어둑한 공간, 4인용 테이블, 마음 풀어주는 친구들, 술, 가벼운 날씨.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예능에 나온 조인성이 한 말이 생각났다. '내가 살면서 지금까지 큰 문제가 없었다고 하면 내가 내 모습을 솔직하게 보여줘도 그렇게 문제가 되지는 않겠다' 그렇게 생각해서 예능에 출연하게 되었다는 말이었다. 그말이 문득 생각난 것은, 나를 솔직하게 보여줘도 괜찮다 생각이 들어서이다. 나는 나를 솔직하게 보여주는 데 인색한 사람이라서. 비록 허투루 산 것 같은 사십춘기이지만, 지금까지 나 자신에게 큰 문제가 없었으니까 괜찮지. 그리고 내가 마음 풀어져 내가 가진 이러저러한 이름과 옷들을 벗어두고, 그냥 나로서 웃어도 될 친구들이 있으니까 괜찮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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