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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이 지금

윤석철 트리오, 21.7MHz

by 혜.리영 2021. 7. 7.


세 달 전쯤인가, 친구 페북에서 공연 예매 안내를 봤다. 홀린 듯 예매를 했고, 그 사이 여러 일을 지나며 7월 윤석철 트리오 공연만을 손꼽았다. 7월이 되면 벌려놓은 일들이 하나둘 마무리 되었을 때였다. 그리고 7월이 다가오며 다행히 집안도 평안해졌다.


공연 당일 쏟아지는 장대비가 걱정스러웠지만 이번에도 엄마 힘이 나의 꽁지에 불을 붙였다. 비도 오고, 멀고, 귀찮은데 그냥 가지 말까봐. 하는 나에게 엄마는 구데기 무서워 장 못 담그겠다 하며 가기로 했으면 가라고 했다. 그래, 가고자 예매해둔 거니 가야지.


혼자 공연을 보러 온 것은 처음이었다. 비도 오고 코로나이고 해서 혼자오는 관객이 많겠지 내심 생각했다. 혼자 온 관객도 많았고, 커플, 가족, 친구 다수의 관객도 많았다. 공연이 시작되고 귀에 박히는 생음악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아 좋다, 내내 그 생각 말곤 다른 건 들어오지 않았다. 아 좋다. 아 좋다. 아 좋다.


피아노 - 콘트라베이스 - 드럼 순으로 악기가 자리했다. 재즈를 잘 알지 못하지만, 이렇게 라이브로 듣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공연 내내 나는 콘트라베이스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현란하고 눈과 귀를 가장 먼저 사로잡는 악기는 아무래도 피아노와 드럼이었다. 그룹 이름에도 있는, 윤석철 트리오의 윤석철 씨는 피아노 였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 피아노 의자 위에서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푸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공연 내내 콘트라베이스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처음에는 피아노와 드럼 사이에서 '조율' 같은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였다. 마치 피아노와 드럼이 성난 파도나 성난 불길처럼 드세게 일어날 때 파도도 불길도 침범할 수 없는 진공의 공간으로 콘트라베이스가 둘의 성난 부딪힘을 완화해주는 것처럼 말이다. 게다가 콘트라베이스 연주자 분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서 있어 더 그래 보였다. 심드렁한 얼굴로, 성난 피아노를 한 번 봤다가 성난 드럼을 한 번 봤다가. 그러면 금세 연주는 조화롭게 하나의 덩어리가 되었다.


그래서일까. 점점 콘트라베이스 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피아노와 드럼이 크고 현란하게(물론 섬세한 소리도 있다) 소리의 공간을 채워갈 때, 콘트라베이스는 그 사이사이 파고들었다. 콘트라베이스 소리가 없었으면 분명 바람이 휘이 빠져나갔을 소리의 구멍마다 콘트라베이스 소리가 있었다. 조율에 이어 빈틈을 메꾸는 실리콘건이나 우레탄폼과 같은 것 말이다. 단체 사진을 찍으면 전면에서 까불거리며 사진을 찍는 아이가 아니라, 맨 뒷줄에서 얼굴만 빼꼼 내밀어 단체사진 대형의 구멍이 없게 메꾸는 얼굴 하나 같이 말이다.


그러다 어느 곡에선가, 피아노와 드럼이 까딱까딱 소리를 낮추고 콘트라베이스가 나섰다. 그런데 거기서 또 한 번 반한 것이다. 피아노와 드럼은 마치 핀 조명을 받으며 혼자 현란한 춤을 추는 싱글 댄서 같다면, 콘트라베이스는 둠둠 리듬을 타며 나타나 묵직한 그루브로 사람들을 사로잡는 변방의 춤꾼 같았다. 실력은 충분했다. 콘트라베이스가 피아노와 드럼을 이끌며 훨씬 풍부한 음악을 만들어냈다. 꽉 채운 소리에 폭 빠질 수 밖에 없었다.


이제는 책 내용도 기억나지 않고, 좋아했던 그 책을 어디에 뒀는지도 기억나지 않는. 파트라스 쥐스킨트의 '콘트라베이스'도 생각났다. 공연을 이렇게 귀로만 즐기고 있는 게 너무 힘들었다. 리듬을 따라 고개를 까딱이는 것도 조심스러웠다. 이 자리가 좀더 느슨하고, 자리에 맥주 한 캔, 와인 한 잔이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리고 콘트라베이스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생각했다. 아니면 콘트라베이스 같은 사람을 만나야겠다 생각했다.


돌아오는 길에 듣는 음악은 이미 생음악을 꼭꼭 눌러 담아놓은 내 귀에 들어차지 않았다. 살아있는 음악을 듣는 건 이렇게 행복하구나.
참 공연에서 들은 말 중 제일 좋았던 멘트는, '오늘은 행복하기만 할래요'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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