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9.12
나에게 주어진 미션을 성공하랏
이동만으로 꼬박 24시간을 채운 듯한 하루를 보내고 나는 그대로 곯아 떨어졌다. 그래도 편안한 분위기와 낯선 곳인데도 익숙한 느낌에 푹 꿀잠 잘 수 있었다. 푹 자고 일어났는데도 이른 시간이었다. 아직 시차가 남아있던 건가. 덕분에 늦지 않게 조식을 먹을 수 있었다.
루르드에서 묶은 호텔 플레장스(쁠레장스)는 조식을 포함해서 세 끼 식사가 프랑스 식으로 준비된다. 이점은 잘 알지 못하고 예약을 했던 터인데, 덕분에 식사 고민이 줄어 다행이었다. 조식을 먹으러 내려가며, 나는 으레 호텔에서 그렇듯 빵, 과일, 요거트, 시리얼 등으로 채워진 조식을 예상했다. 그러나 내 자리에는 그릇이 정갈하게 셋팅 되어 있었고 준비된 코스인 듯 아버지 직원이 차례차례 음식을 가져다 주었다. 조식 메뉴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빵과 과일, 스프 커피 등이었다. 긴 이동 탓에 아직 소화가 잘 되지 않아 요거트와 과일 조금 그리고 커피만 마셨다. 아버지 직원은 연신 나에게 이거 더 먹을래? 저거 더 먹을래? 계속 권했다. 조금 밖에 먹지 않는 내가 이상하고 안쓰러워 보였나보다. 그래서 나는 괜찮다고 배부르다고 했다.
'배풀러?'
어떻게 배웠는지 아버지 직원은 자신의 배를 쓰다듬으며 우리 말로 '배불러'를 물어봤다. 갑작스런 한국말에 그리고 정말로 걱정이 서려 있는 아버지 직원의 눈빛에 나는 그만 감동과 더불어 웃음이 빵 터졌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예상하지 못한 한국말을 들었으니! 덕분에 기분 좋은 아침 식사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원래는 루르드에 이틀 묶을 예정이었다. 그렇게 하니 이동으로 하루를 날린 어제를 제외하면 오늘이 여행의 전부인 것이다. 다음 날은 이동 하려면 이른 시간에 나가야 해서 루르드를 더 볼 수가 없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내 컨디션 체크부터 했다. 이대로 오늘 하루를 빡세게 루르드를 보고 내일 이동할 수 있겠는가? 답은 아니다 였다. 그래서 아침을 먹고 나갈 채비를 마치고 모니카에게 얘기했다. '나 하루 더 묶을래' 모니카는 반짝이는 눈빛으로 '정말?' 하고 놀라 기뻐하며 나를 끌어 안았다. 이 정도로 놀라고 환대받을 일이 될 줄은 몰랐다. 그러나 어린아이와 같은 모니카의 환대에 나 역시 더욱 기분이 좋았다. 이곳을 루르드 숙소로 잡길 잘 했다, 하루 더 묶길 잘 했다.
자, 이제 나에게는 루르드에서 하루가 더 생겼다. 마음이 여유로워졌다. 그래서 오늘은 나에게 주어진 미션을 해결하기로 했다. 먼저 첫번째 미션은 엄마에게 택배 보내기이다!
여기서 잠깐! 루르드가 어떤 곳인지 낯선 이들이 많을 것 같다. 루르드는 프랑스의 작은 마을로 성모님이 발현하신 후로 기적이 일어나고 있는 가톨릭 성모 발현 성지 중 한 곳이다.
https://terms.naver.com/entry.naver?cid=43082&docId=799947&categoryId=43082
가톨릭 신자라면 꼭 가보고 싶은 성지 중 한 곳으로 꼽히는 곳이다. 특히 이곳은 성모님 발현 이후 지하에서 나오는 샘물이 기적을 일으켜서 많은 병자들이 끊임없이 이 곳으로 오고 있고 또 지금도 그때와 같은 치유의 기적이 일어나고 있다. 나의 첫번째 미션이 바로 이 기적수 이다. 성지에 가서 기적수를 받아 무사히 집으로 택배 보내는 것!
조식을 하며 점심은 나가서 먹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럼 점심 도시락을 싸줄까? 좋다고 했다. 나가기 전에 도시락을 받았고, 모니카는 내 가방을 보더니 이런 가방은 소매치기에게 위험하다며 자신의 백팩을 빌려줬다. 덕분에 성수를 무사히 우체국까지 가져갈 수 있었다. 아버지 직원은 루르드 성지까지 가는 길을 안내해주겠다며 따라 나왔다. 연세가 많으신대 정정한 걸음으로 숙소에서 나와 루르드 성지가 보이는 앞까지, 그 옆에 베르나데트 성녀의 생가까지 소개시켜 주고 또 한 번 소매치기 조심하라는 당부를 꼼꼼히 주고 가셨다.
여유가 가득해서인지 발걸음이 가벼웠다. 우선은 성지까지 가는 길에 즐비한 성물방(보다는 기념품샵 느낌)을 구경했다. 처음에는 다양한 상품이 많은 것처럼 보였는데 오가며 계속 보다보니 비슷비슷했다. 기적수를 담을 물통을 고심하여 사고 백팩에 담은 뒤 성지로 갔다. 구름이 적당히 낀 맑은 날이었다. 성지 안내문을 받아들고 걸어갔다.
우체국 문 닫는 시간 전까지는 우체국에 가야해서, 우선은 성지 내 각 건물의 위치만 확인하며 기적수를 향해 갔다. 기적수가 콸콸 나오는 곳에는 물통에 담을 수 있도록 되어 있는 수돗가 뿐 아니라, 세면대, 식수대 등도 같이 있었다. 루르드에 있는 동안 매일 이곳에 와서 기적수로 세수하고, 벌컥벌컥 마시며 지냈다. 미리 사둔 물통에 기적수를 담았다. 그리고 성지를 나와 우체국으로 향했다. 루르드에서 나에게 주어진 가장 큰 미션이다. 엄마는 내가 긴 여행을 떠나는 길에서도 루르드 기적수에만 관심이 있었다. 한동안 코로나로 인해 해외여행이 막혀서 기적수를 얻지도 못했다며 얼른 받기를 원했다.
기적수를 받고, 또 마침 초봉헌을 하는 곳이 가까이 있어 가족과 지인들을 위해 초를 봉헌했다. 그리고 한적한 벤치에 앉아 모니카가 싸준 도시락을 꺼내 먹었다. 바케트 빵에 햄과 버터가 올라간 잠봉뵈르였다. 프랑스 인이 만들어준 찐 잠봉뵈르였다. 그외에도 물과 요거트, 바나나가 있었다. 덕분에 여유를 가지고 든든히 점심을 챙길 수 있었다.
https://maps.app.goo.gl/6LiMyhX8uDEU6d4M7
성지에서 기적수를 받는 1차 미션 성공! 이제 2차 미션으로 우체국에 가서 무사히 택배를 보내는 일만 남았다. 루르드에 도착하기 전부터 프랑스 우체국에서 택배 보내는 것을 수시로 검색해서 찾아 읽었다. 또한 정말 감사하게도 루르드에서 기적수 택배 보내는 것을 블로그에 남겨준 사람들도 간간이 있어 더욱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우체국에 도착하니 또다른 난관이 있었다.
루르드에서 해외로 보내는 택배는 5kg 짜리 박스만 가능하다. 나는 해당 박스에 맞게 기적수와 집에 보낼 몇 가지 짐을 넣어 박스를 꾸렸다. 그리고 우체국 직원에게 다가갔다. 아뿔사...그는 영어를 1도 못했다. 나 역시 영어 실력이 짧지만 그는 정말 한 마디도 못했다. 번역 어플을 돌려 프랑스어로 물어봤는데, 아뿔사! 그는 해외 배송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ㅠㅠ 신입이었던 걸까... 사정을 나는 알 수 없지만 그는 다른 직원에게 가서 물어보고 하더니 결국 다른 직원을 불러와서 그와 내가 머리를 맞대며 쓴 해외 택배 송장이 맞는지 확인시켜 주었다. 확인증을 무사히 받아들고 그와 나는 '우린 해냈어!'라는 눈빛을 주고 받았다. 이로서 2번째 미션도 무사히 성공했다. 의기양양한 마음으로 우체국에서 나왔다. 그제야 발걸음에 여유가 생기며 다시 루르드 성지로 향했다.
성지로 올라가는 길에 베르나테트 성녀의 생가에 들렀다. 베르나데트 성녀에 대해 잘 알지 못했는데, 그녀가 루르드 성모님을 만난 분이었다.
다시 성지로 올라가 성모님이 발현하셨던 성모동굴 근처만 한 바퀴 둘러보고 숙소로 일찍 들어갔다. 뭔가 엄청 맛있는 걸 먹고 싶기도 했지만, 레페 맥주 한 캔 사들고 일찍 하루를 마무리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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