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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여행

[루르드] 온전히, 하루

by 혜.리영 2024. 1. 4.
23.09.13
은총의 은총을 입은 하루

 

어제 미션을 성공하고 마음 편히 숙소에서 저녁을 보내며 짐 정리를 다시 한 번 하는데, 집으로 보낼 물건이 또 나왔다. 루르드를 떠나 다음 여행지에서도 안 쓸 것 같은데 버리기에는 아까운 것들 말이다. 그래서 다시 폭풍 검색. 어느 블로그에선가 3kg 박스도 해외택배 가능하다는 글을 보고, 그래 기적수 더 넣어서 3kg 택배 보내자고 마음 먹고 짐을 정리했다. 그래서 아침을 먹고 가벼운 마음으로 성지로 향했다.

 

성 비오 10세 대성당 · 97 Bd Rémi Sempé, 65100 Lourdes, 프랑스

★★★★★ · 바실리카

www.google.com

 

오늘 첫번째 일정은 바로 미사이다. 어제 미션을 수행하느라 미사를 하나도 하지 못했다. 오늘은 미사도 드리고 저녁에는 로사리오 기도도 가보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오전 미사는 성비오10세 성당에서 있었다. 루르드 성지에는 성전이 여러 곳 있고 미사 시간마다 미사를 거행하는 성전이 달라서 시간과 위치를 잘 확인하고 가야한다.

 

성비오10세 성당은 엄청 큰 공간이었다. 정말 이곳에서 미사를 드린다고? 싶을 정도로 마치 지하 벙커 같은, 그러나 어둡지 않고 크고 환한 곳이었다. 곳곳에 성인성녀들의 모습이 큰 천으로 걸려있고, 가운데 성전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자리가 나 있었다. 그날 무슨 날이었는지 아니면 원래 이런 미사인지 나는 알지 못하나, 각 단체를 상징하는 깃발을 든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 주춤주춤 어디에 앉아야 할지 몰라서 왔다갔다 했다. 동양인이라고는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대부분 단체로 온 듯 서로서로 자리를 맡아주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서 어디에 앉아야 할지 몰라 더욱 우물쭈물 했다. 간신히 한 자리 앉았다.

곧 미사가 시작되었다. 내가 앉은 자리는, 대박! 바로 신부님이 입장하는 자리였다. 긴 깃발 행렬과 수많은 신부님들의 입장을 보았고 또 그에 앞서 향로가 입장하였는데. 중간에 한 번 서서 향을 치는데, 바로 내 앞에서 멈춰섰다! 향을 바로 코 앞에서 받으며 연신 '하느님 감사합니다' 외쳤다.

 

미사는 똑같았다. 프랑스어로 미사가 진행되기는 했으나 큰 전광판에 영어로 번역된 말이 나왔고 또 독서는 프랑스어가 아닌, 타 언어권에서 읽은 듯 했다. 내가 가톨릭이어서 좋은 이유 중 하나는, 어디서든 미사는 똑같다는 것이다. 언어만 다를 뿐 양식은 모두 같아서 이렇게 타국에서도 익숙한 전례를 통해 마음의 안정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나는 참 좋다. 여튼, 미사를 마치고 더욱 가뿐하고 즐거운 마음이 되어 성지를 돌아다녔다. 오늘은 정말 말 그대로 돌아다녔다. 무얼 꼭 보고 꼭해야한다는 마음 내려놓고 그냥 발길 닿는대로 구석구석 돌아다니고 또 앉아서 쉬고 했다. 걷다가 우연히 낮 로사리오 행렬도 만나고, 침수 세례 줄이 짧은 때에 가서 침수 세례도 받고. (코로나 이전에는 침수 예식으로 했는데, 코로나 이후로는 손만 씻는 것으로 간단해졌다.)

 

그리고 기적수를 받아 다시 우체국으로 갔다. 어제 그 청년만 있었다. 미심쩍었지만 어제 해외택배 보내는 걸 옆에서 다 봤으니 잘 하겠지 싶어 믿고 택배를 맡겼다. 참, 블로그에 3kg 택배박스도 간다는 정보는 잘못된 정보였다. 그 밤에 하도 많은 검색을 해서 어디서 보고 잘못 알게 된 건지 알 수 없으나, 루르드 우체국에서는 5kg 박스만 해외로 보낼 수 있다. 그 사실을 알고 허탈해져서, 가서 기적수를 더 떠올까 생각이 들었지만 그만두었다. 유난히 해가 뜨겁고 한 여름보다 더한 더위로 찌는 날이었다. 5kg 박스에 3kg에 해당하는 내용물만 넣어서 택배를 보내기로 했다. 청년은 내가 쓴 송장을 잘 보고 다 됐다고 했다. 아닌데, 뭔가 허전한데...... 믿어도 되는 걸까 의심의 회로가 돌았지만, 어제 같이 보내는 걸 잘 봤으니 맞겠지 하고 믿기로 했다. (믿지 말았어야 했다......)

 

https://maps.app.goo.gl/ixi6DhJ3veovD5aG6

 

Jacquaire Information Center · 16 Bd de la Grotte, 65100 Lourdes, 프랑스

★★★☆☆ · 정보 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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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시 성지로 올라가는 길에 뜻밖의 장소를 발견했다. 바로 순례자 사무소였다! 루르드에서도 프랑스길로 갈 수 있다고 들었다. 그런데 루르드에도 순례자 사무소가 있는 줄은 몰랐다. 그렇다, 나의 다음 여행은 바로 산티아고다. 루르드 순례자 사무소에 들려 순례자 여권을 샀다. 개인정보를 적어 드리니, 사무소에 있는 할아버지 직원이 '곧 네 생일이네' 하며 크게 기뻐했다. 그리고는 같이 계시는 할머지 직원에게도 '이 친구 곧 생일이야' 하시고는 두 분이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줬다. 😆 이렇게 기쁘고 아름다운 생축 노래를 들은 적이 있던가! 나는 엄청난 생일선물을 받은 듯 의기양양 해진 마음으로 성지로 향했다.

성지 구석구석을 구경하고 저녁시간이 되어 집으로 갔다. 아니, 호텔로 갔다. 중간에 점심에도 가서 밥을 먹고 나왔다. 이제 속도 많이 좋아져서 루르드의 마지막 하루인 오늘은 삼식이가 되기로 결심했다. 아버지 직원에게도 내가 잘 먹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돌아다니며 놀다가도 점심에 들어가고, 저녁 먹으러 또 들어갔다.

그리고 밤, 9시에 루르드 성지 광장에서 로사리오 기도가 있다. 사실 걱정반 기대반이었다. 기대는 당연한 것인데, 걱정은 늦은 밤 시간이라는 것이다. 내가 묶었던 호텔이 중심가에서 약간 외진 곳에 있어서 큰길을 따라 오려면 돌아와야하고 빨리 오려면 좁은 계단길로 와야한다. 근데 바로 그 좁은 계단길이 내 눈에는 외진 길로 보여서 밤에 혼자 돌아올 때가 걱정되었던 것이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밤 로사리오 기도를 안 하고 갈 순 없지! 용기를 내서 나갔다. 성지로 가는 길에 한국인을 만났다. 처음이었다. 세계여행 중이라는 부부였다. 말동무가 되어 같이 로사리오 기도를 다녔다. 이제 곧 나는 산티아고에 간다는 말에 선생님은 꼭 완주하라고 신신당부를 하셨다.

루르드 성지에 있는 로사리오 기도는 모인 모든 이들이 묵주기도를 함께 드리는 것이다. 성모님을 따라 행렬하며 각국의 언어로 성모송이 바쳐진다. 운이 좋으면 한국어 성모송도 들을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운이 좋았다. 예상치 못한 때에 느닷없이 한국어 성모송이 나왔다. 그때 나는 영상을 촬영중이었고, 온전하게 루르드에 울리는 한국어 성모송을 담을 수 있었다. 루르드에 와서부터는 계속 나에게 은총이 쏟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기쁘게 로사리오의 밤 기도를 마치고 성지를 더 둘러본다는 부부와 헤어짐의 인사를 나누고 나는 숙소로 향했다. 많은 이들이 움직일 때 나도 같이 가려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루르드 바로 앞이나 옆길로 나가서 위치한 숙소로 갔다. 내가 있는 길까지 나가는 이는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래도 괜찮다, 괜찮다 외치며 내가 염려하던 그 좁은 계단길 앞까지 왔다. 앗 그런데 저기 뭐지? 계단 초입에 두 사람이 있었다. 멀리서 보니 젊은 여자와 할머니였다. 그리고 그들은 좁고 가파른 계단으로 휠체어를 옮기고 있었다. 이 계단에는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다. 그러나 밤 8시까지만 운행하고 그 이후는 운행이 중단된다. 아마도 저 휠체어는 할머니의 것이고 엘리베이터로 올라가는 저 윗동네에 사시는 것 같았다. 나도 그 길로 올라가야 했고, 나는 동행이 있다는 기쁨 하나로 뛰어 올라갔다. 짧은 영어로 도움이 필요하냐 묻고 젊은 여자와 같이 휠체어를 들었다. 그녀는 내게 넌 천사라고 말했다. 그 순간, 말할 수 없는 기쁨이 차올랐다.

이게 뭐라고, 이 좁고 어두운 길이 무서워서 나는 로사리오의 밤 기도에 가지 않으려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나의 두려움을 깨고 로사리오 기도에 함께 하고 오니, 하느님께서는 나를 도움이 필요한 곳에 천사로 보내주셨다. 게다가 나의 두려움이 있는 곳으로. 두려움은 나의 것이었고, 나를 필요한 도구로 쓰신 건 하느님이셨다. 좁고 어두운 길은 내가 가진 두려움이었다. 두려움을 없앤 것이 아니라 그저 기도했다. 성모님 저 좀 무서운데 그래도 기도하러 가니까 제가 안전하게 숙소에 들어갈 수 있게 같이 기도해주세요. 나를 천사로 맞이한 그들의 행복한 웃음 덕분에 나 역시 크게 기뻐했다. 정말 은총이 가득한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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