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항공을 타고 태국 수완나폼으로 향했다. 일행과 나는 복도쪽에 마주 앉아 트인 자리의 장점을 누리려 했으나. 우리의 앞뒤 양옆으로 자리한 중년의 남녀들은 그럴 틈을 주지 않았다. 우리를 두고 수시로 넘어가는 손은 과자와 음료를 넘기기 바빴고. 자리와 복도를 오가는 몸짓은 서로에게 농을 건네기 바빴다. 야간까지는 아니지만, 수완나폼에 자정 넘어 도착하는 비행이라 쪽잠이라도 자고 싶었던 마음은 물건너 가버렸다. 그러나 그와중에도 작은 즐거움은 있었다.
내 옆자리에는 패키지 관광으로 파타야에 가는 중년의 부부가 탔다. 출입국 신고서를 작성해야하는데, 패키지 상품 파일에도, 아들이 챙겨준 메모에도. 출입국 신고서 작성법은 없었다. 그래도 아주머니가 여행을 다녀보셨는지 눈치껏 자리에 맞게 적어나갔다. 그런데 태국에서 머물 장소, 숙소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 아저씨는 패키지 여행팩을 뒤적이고 아주머니는 뭘 써야하나 난감해 하셨다. 그러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사실 나도 영어는 약한 편이라, 나한테 써달라고 하면 어쩌지 싶은 마음으로 외면하고 싶었다. 모르는 단어에서 철자라도 틀릴까봐 조마조마 했던 것이다. 속좁은 마음이란. 눈이 마주친 아주머니는 이거 뭐라고 써야해요? 부터 시작해서 결국에는 가는데 똑같이 쓰면 안되요? 라고 하셨다. 나는 머슥하게 웃으며 아주머니 그런데 저는 방콕이나 파타야가 아니라 섬으로 들어가는 거라서…같은 곳으로 쓰면 안 될 것 같아요. 라고 말했다. 아주머니는 난감해하며 그럼 어쩌지, 하시다. 나에게 패키지 여행 일정표를 건네주셨다. 다행히 거기에는 전 일정과 함께 숙소 이름도 나와 있었다. 숙소는 한글로 쓰여 있었다. 나에게 일정표와 출입국 신고서를 맡기고 이제 살았다는 표정의 아주머니. 나는 아씨 영어, 속이 찌푸려졌다. 영어 울렁증은 아무래도 힘들다. 다행히 숙소명이 어려운 편은 아니었고, 철자가 틀리던 말던 그냥 쓰자 싶어서 써 드렸다. 아주머니는 다 쓴 출입국 신고서를 받고 고맙다고 인사를 주셨다. 그리고 곧이어 승무원에게 맥주 두 캔과 콜라 하나를 주문했다. 그리고 콜라는 나에게 주셨다. 고맙다고. 나는 죄지은 마냥 화들짝 놀랐다. 나에게 부탁하지 말기를, 하며 외면하고 싶었던 나의 마음을 들킨 것 같았다. 도움이란 건 부족하든 틀리든 그냥 해주면 되는 건데. 나는 ‘내가 틀릴까봐’ 그걸 주기 머뭇거렸다. 콜라 한 캔으로 나는 죄를 짓고 보속을 받은 기분이었다. 아주머니가 건네주신 콜라와 머핀 반 쪽으로 지루할 수 있는 밤 비행에서 따뜻하고 시원한 간식을 마음까지 든든히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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