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엄마에게 생일선물을 받는 것이 꿈이었다. 아주 어릴 적이지만 아빠는 미미인형의 집을 선물로 사들고 온 강렬한 기억이 있어서인지 나는 유독 엄마에게 선물이 받고 싶었다. 엄마에게 생일선물은? 하고 물으면, 생일상 차려주고 미역국 끓여줬다는 대답만 올뿐이었다. 그렇다 소녀감성의 딸과 달리 엄마는 무뚝뚝한 실용주의 감성인 것이다.
그런 엄마가 나에게 처음으로 사준 생일선물이 있다. 이 글을 쓰며 지난 나의 기억을 더듬어보니, 거의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성인이 되고 어느 때부턴 가는 작은 쪽지와 현금을 주었으니.
엄마가 처음으로 사줬던 생일선물은 치자나무 화분이었다. 아마 내가 아직 초등학생이었을 것이다. 엄마를 따라 시장에 갔고, 시장 꽃집을 엄마는 꼭 한 번씩 둘러보고 가곤 했다. 화분 하나, 씨앗 하나 사는 것도 없으면서 장을 보는 중간 과제처럼 엄마는 꼭 꽃집에 들렸다. 그날도 그렇게 갔던 것 같다. 꽃집에 있었고, 나는 그다지 흥미가 없었는데. 엄마가 느닷없이 생일선물로 하나 사주겠다고 고르라고 했다.
엄마는 집 베란다에 이런저런 화분을 많이 길렀다. 또한 할머니는 아파트 뒷 화단에 작은 텃밭을 가꾸었으니 식물 키우기 실력자들이었다. 그러나 어린아이인 나는, 아니 그냥 나는 별로 흥미가 없었다. 그럼에도 엄마가 처음으로 ‘생일 선물’로 사준다는 말에 화르륵 가슴이 설레었다. 이것저것 보다가 금세 골랐던 기억이 난다. 하얀 치자 꽃이, 향기가 바로 선택하게 했다.
치자나무는 하얀 꽃이 피고 향기가 짙다. 짙은 향기만큼이나 잎과 꽃잎의 색이 단순하게 짙다. 짙은 녹색의 잎, 짙은 흰색의 꽃. 엄마는 꽃이 피게 잘 키우라고 아직 봉오리가 맺힌 화분을 사줬다. 화분을 품에 안고 집에 가는 길이 얼마나 신났는지. 품에 안은 화분에서는 살랑살랑 꽃향기가 나고, 나는 화분보다 생일선물을 받았다는 것에 신이 나 있었다.
그다음 이야기는 예상하는 대로이다. 집에 가져온 화분을 처음 며칠은 애지중지 물을 주고 들여다보고 했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내 흥미에서 멀어지고 결국은 엄마가 잘 키워냈다는 그런 얘기. 여전히 화분을 잘 못 키우고 금세 시들게 해 버리기 일쑤지만.
생일을 생각하면 코 끝에 살랑이던 치자향이 아직도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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