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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이 지금

[꽃다발] 활짝 핀 얼굴

by 혜.리영 2020. 8. 28.

 

    친구들끼리 모이면 종종 농담처럼 나오는 얘기 중 하나가, 꽃다발만 선물 받은 건 아니지? 반짝이는 것 같이 있어야지~ 하는 말이다. 꽃다발은 선물을 위한 애피타이저처럼 기분을 돋우는 하나의 도구로 취급되는 것이다. 꽃다발을 받으면 기분은 좋지만, 그것만 받으면 기분이 좋지 않을 것이다는 명제. 나는 꽃다발만 받아도 기분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발이 아니어도 나는 꽃을 받는 걸 좋아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꽃을 받아본 적이 거의 없다. 내가 꽃을 그리 못 받아봐서 이렇게 꽃을 받는 걸 좋아하나 싶은 생각도 들긴 했지만, 그건 아니다.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꽃을 받는 걸 좋아했다. 꽃은 상을 받거나 졸업을 하거나 등과 같이 좋은 일과 함께 있었다. 그래서 나는 꽃다발 혹은 꽃 한 송이 받는 걸 좋아했던 것 같다. 꽃과 함께 좋은 일이 오니까.

 

    그러나 특별한 일이 없으니 꽃이 나에게 올 리가 없고, 그래서 나는 내가 꽃을 주기로 했다. 내성적인 성격에 나서서 나 꽃 좋아해요, 꽃 받고 싶어요 말은 못 하니. 내가 먼저 주자. 내가 꽃을 자주 주면 사람들이 내가 꽃을 좋아하는 걸 알아주겠지 하는 마음이었다. 또 미사 중에 신부님 강론에서 받기만 바라지 말고 받고 싶은 것을 타인에게 먼저 해주라는 말씀을 듣고 더욱 마음을 그렇게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내가 먼저 해주면 나도 그렇게 받을 수 있겠지 하는 마음.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커피 한 잔 사줄게 하는 마음으로 꽃 한 송이 줄게. 꽃과 함께 기쁜 일, 특별한 일이 생길 거야.

 

    그러나 아직 특별한 날이 아니고 별일 없이 꽃을 받은 적은 별로 없다. 생일이나 특별한 날에 꽃을 받긴 하지만, 아무 날도 아닌 때 생각났다며 꽃 한 송이 건네받는 일은 거의 없었으니. 여태 만난 사람들은 나를 잘 몰랐던 사람들이었겠지. 그중에도 기억에 남는 한 장면이 있다면 세상에서 나를 제일 잘 아는 사람, 엄마가 준 꽃다발이었다. 

 

    여느 모녀처럼 별거 아닌 일로도 투닥 싸우던 어느 날, 그날따라 유독 신경질적으로 엄마에게 화를 냈다. 내가 잘못한 걸 알면서도 입이 삐죽 나와 먼저 말하기 싫은 그런 날 말이다. 다 커도 엄마 앞에서는 여전히 어린아이처럼 철이 안 들었다. 엄마도 그날따라 속이 탔는지 집 밖으로 휙 나가버렸다. 여느 싸움도 시간이 다 해결해 주듯, 나는 마음이 좀 누그러졌고 엄마가 들어오면 어떻게 말을 건네야 하나 애꿎은 고민만 하고 있었다. 집에 들어오는 엄마 손에는 꽃다발이 들려 있었다. 자린고비 엄마가 꽃다발이라니, 이렇게 풍성한! 엄마는 너 꽃 좋아하잖아, 엄마가 미안해하고 건넸다. 나는 이미 패자가 되었다. 부모 자식 싸움에 승패가 어디 있겠냐 마는. 그 순간 나는 어쩔 수 없는 아이, 자식인 것이었다. 퉁퉁거리며 속으로는 너무 좋아 꽃다발을 받았던 그날. 내가 어쩔 수 없는 엄마 딸인 것을 확인한 그날의 꽃다발은 잊을 수 없다. 

 

    꽃을 정작 잘 받지 못하면서도 내가 꽃을 선물하길 포기하지 않는 것은, 이렇게 꽃을 받는 이를 통해 나 또한 제일 좋은 선물을 받기 때문이다. 엄마의 꽃다발을 받으며 내색 않는다고 했어도 이미 내 얼굴에 숨길 수 없는 마음이 피어났을 것이다. 나 역시 그렇다. 꽃을 선물하면 별일 없이 만나 갑자기 받은 꽃 한 송이에 그대로 피어나는 받는 사람의 얼굴을 본다. 꽃과 같이 활짝 핀 얼굴은 나만이 보는 그의 얼굴이다. 자신의 얼굴이 건넨 꽃보다 더 예쁘게 활짝 피었다는 걸 나만 볼 수 있으니. 어쩌면 꽃을 주면서 나도 꽃을 받았던 것이다. 

 

    나는 아직 믿는다. 내가 이렇게 꽃을 주면 나도 이렇게 꽃을 받는 날이 올 것이라고. 내가 받을 꽃들이 내 미래에 차곡차곡 쌓여서, 하나둘 받게 될 날이 나에게 다가오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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