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에서 내리면 떡볶이집이 있다. 한동안 문이 닫혀 있던 자리가 최근에 새롭게 단장하여 다시 떡볶이를 파는 것이다. 몇 달 전 이사를 오고 제일 아쉬웠던 것이 떡볶이였다. 패스트푸드와 커피 체인점은 많았지만, 떡볶이 김밥과 같은 분식집이 아쉬운 동네였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퇴근길 자석에 끌리듯 떡볶이를 사러갔다. 떡볶이와 튀김, 튀김은 새우, 오징어, 야채. 아주머니가 야채는 안 자를게요, 하고 말했다. 야채 튀김은 자르면 부스러기만 많아지고, 먹기 직전에 잘라 먹는 것이 낫다고 했다. 그리고 덧붙여, 야채 튀김은 안 자르고 그냥 왕 먹어야 제일 맛있어요. 그럴 것 같아 보이는 야채튀김이었다. 일반적으로 채썬 야채가 버무려져 튀겨진 모양이라면, 이 집은 조금 두껍게 썬 야채에 깻잎이 이불처럼 덮여 있고 거기에는 초승달처럼 단호박이 한 조각 붙어 있었다. 두툼하고 모양까지 예쁜 야채 튀김은 아주머니 말처럼 두툼한 튀김 그대로 한 입에 베어 먹어야 맛있을 것 같았다.
공식이라는 게 있다. 탕수육 소스를 부어 먹냐, 찍어 먹냐 등과 같이 자기만의 공식 말이다. 단순히 입맛에서부터 삶을 살아가는 태도, 스트레스 풀이, 쉼, 열의 등등. 자기만의 공식으로 삶을 누리며 사는 것 아닐까. 하나씩 마음이 일어서고 있는 요즘은 순간을 느끼고 누리고 싶어진다. 휴일이던 전날은 동네를 하릴없이 걸어다녔고. 출근한 오늘은, 매콤한 떡볶이에 맥주 한 잔이 먹고 싶었다. 맥주 대신 전에 사둔 와인을 땄지만. 더없이 평안한 저녁이었다.
평화롭다는 말은 하나 이상의 것들이 조화를 이루고 안정되었다는 뜻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평안하다는 말은, 얕은 언덕에 나무 하나 길게 늘어진 그늘에 누워 있는 나 하나가 떠오른다. 4월 말에서 5월 초의 바람이 불고, 어디서 라일락 향이 알듯 말듯 날 것 같은 순간 말이다. 퇴근길이 이렇게 평안해도 되는가 싶었지만. 또 이렇게 금방 평안함을 느껴도 되는가 싶었지만.
그냥 지금이 그렇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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