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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이 지금

내일의 나는(046)

by 혜.리영 2021. 5. 6.


오랜만에, 한동안 자주 가던 카페에 갔다. 휴일 날씨는 맑았고, 집에만 있을 수 없었다. 해야할 일들이 있어 마냥 놀 수만은 없어서, 노트북을 부랴부랴 챙겨 나간 것이다. 전날 잠들기 전부터 어디로 갈까 설레발이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아 궁금한 스터디 카페에 갈까, 햇볕이 잘 드는 통창이 좋은 길 건너 카페로 갈까. 아니면 조금 더 걸어 빵이 맛있는 카페로 갈까. 자리가 있을지 없을지에 대한 걱정보다 어디로 가서 여유를 부리며 휴일을 즐겨볼까 설레기만 했다.

그러나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서면서, 전날 설레발 치며 만들었던 가려던 카페 순위는 바로 폐기 되었다. 오랜만에 그곳에 가보자. 그곳은 이사오기 전 동네에 있는 카페로 커피가 맛있고 공간 분리가 잘 되어 있는 카페였다. 당연하게도 코로나로 좌석수가 줄어 자리가 없을거라는 생각을 갖고 그곳으로 간 것이었다. 휴일이라고 모처럼 한낮에 밖에 나왔는데, 그대로 다시 카페로 들어가긴 싫었던 것이다. 이렇게라도 조금 걷고 싶은 마음에, 자리가 없어 다시 나와얄 게 뻔한 그 카페로 향했다.

저녁쯤에 카페에서 나와 무엇을 먹어야 하루를 행복하게 마무리 할 수 있을지 생각하며 카페에 도착했다. 당연하게도 자리는 없었다. 책을 읽거나 노트북에 열중하거나, 대부분 혼자온 손님으로 카페는 자리가 없었다. 코로나로 인해 거리두기를 한 덕분인지 전보다는 한층 카페다운 분위기였다. 이곳은 평소에도 공부하기 좋은 카페로 소문이 나서, 근처 대학의 시험기간이라도 되면 카페가 아닌 도서관이 된 듯 공부하는 손님으로 빽빽해진다. 예상하고 온 터라 아쉽진 않았다. 그냥 익숙한 분위기를 다시 보고 싶었을 뿐이니까. 그런데, 돌아 나오려는 때에 자리를 정리하며 일어나는 손님이 보였다. 아싸! 자리가 난 것이다.

음료를 주문하고, 종업원이 와서 자리를 소독해주고, 노트북을 꺼내고, 커피 한 모금을 마시고 나자 기운이 났다. 한때 매일같이 퇴근하고 이곳 카페에 와서 문닫는 시간까지 개인 작업을 했던 때가 있다. 해보고 싶은 것이 있어서, 퇴근 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매일 이곳에 왔던 것이다. 속이 울렁거리고 몹시 힘들었지만, 엉망이더라도 해보고 싶었던 개인작업을 꼭 해내고 싶었다. 함께 시작한 그룹에서 유일하게 결과물을 내었다. 결과물의 퀄리티 보다는 끝을 해냈다는 것이 유일한 자랑이지만.

남의 돈을 받고 남의 일을 하는 직장인으로 살아가다보니, 내 것으로 뭔가 하고 싶다는 욕구가 자꾸 차올랐다. 학창시절부터 창작의 욕구가 나를 이끌었고, 뭐든 만들어야 속이 풀리는데. 십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남의 일만 하며 삶을 살아가니 힘든 것이다. 긴 직장생활 동안 그때가 처음으로 오직 내가 하고 싶어서, 시간을 쏟아 결과물을 만들어낸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때 다시 알았다. 내가 무얼 좋아하는지.

좋아하는 것만 하고 살 순 없어.
그런데 모두 그렇게 살고 있으면, 나 하나쯤은 좋아하는 거 하며 살아도 되지 않을까.
강산이 변하는 동안 직장인으로만 살아서 어떻게 시작해야하는 지 잊어버렸다.

카페에서 내가 한 일은 노트북을 켜고 과제를 한 것이다. 긴 코로나의 시간, 나는 나를 위한 작은 배움을 시작했다. 아무짝에 쓸모가 없을지라도 뭐라도 하고 있으면 내일의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오늘의 나는 아직 남의 일을 하며 남의 돈을 받고 살지만. 내일의 나는 하루 더 나에게 충실했으면 좋겠다. 오직 세상에 자신 뿐인 어린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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