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31 꽤 괜찮은 마음 (05) 내가 꼬따오에 있던 11월은 우기였다. 비가 하루 종일 오거나 추운 건 아니었다. 우기이고 11월이라고 해도 28도를 웃도는 기온은 따뜻했고 서울보다 훨씬 나았다. 그러나 바닷속은 조금 달랐다. 나중에 장마인 제주에서 펀 다이빙을 하며, 우기임에도 그 정도였던 따오의 바다가 얼마나 잔잔하고 아름다웠는지 새삼 깨달았지만. 바다 수업을 받던 그때는 그런 것을 알리 만무했다. 우기인 바다는 조류가 있었고 바닷속이 조금 탁했다. 그러나 오픈워터 수업을 들으며 그런 것이 내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나는 바닷속에서 호흡을 잡고 조류에 자꾸 밀리는 이 몸뚱어리를 제대로 건사하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맘대로 움직이지 않는 몸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바닷속에 있어서 자유롭고 편할 줄 알았는데(수업으로 보아온.. 2020. 8. 29. [꽃다발] 활짝 핀 얼굴 친구들끼리 모이면 종종 농담처럼 나오는 얘기 중 하나가, 꽃다발만 선물 받은 건 아니지? 반짝이는 것 같이 있어야지~ 하는 말이다. 꽃다발은 선물을 위한 애피타이저처럼 기분을 돋우는 하나의 도구로 취급되는 것이다. 꽃다발을 받으면 기분은 좋지만, 그것만 받으면 기분이 좋지 않을 것이다는 명제. 나는 꽃다발만 받아도 기분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발이 아니어도 나는 꽃을 받는 걸 좋아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꽃을 받아본 적이 거의 없다. 내가 꽃을 그리 못 받아봐서 이렇게 꽃을 받는 걸 좋아하나 싶은 생각도 들긴 했지만, 그건 아니다.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꽃을 받는 걸 좋아했다. 꽃은 상을 받거나 졸업을 하거나 등과 같이 좋은 일과 함께 있었다. 그래서 나는 꽃다발 혹은 꽃 한 송이 받는 걸 좋아.. 2020. 8. 28. [가시나무] 더 이상 무섭지 않은 가시나무는 노래 제목만이 아니었다. 낮은 덤불로 넓게 자리하는 가시나무는 짙은 청록빛으로 삐죽삐죽 솟은 가시와 같은 잎이 위협적이다. 그래서 주로, 각 아파트 단지마다 지하실 창문 앞에 가시나무가 있었다. 단지가 넓은 시영아파트는 지금과 달리 지하 주차장이 없었다. 대신 아파트마다 지하실이 있었다. 그 지하실에는 주로 해당 라인의 주민들이 알음알음 쓰지 않는 짐을 두곤 했다. 낡은 자전거, 쓰지 않는 공구 등 말이다. 그래서 굳게 닫힌 지하실의 문은 늘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게다가 뒷밭으로 가면 지하실 창문 앞마다 무시무시한 가시나무가 자리하고 있어 그곳에 대한 환상은 더욱 커져만 갔다. 초등학교 저학년까지 나는 알아주는 골목대장이었다. 놀이터, 단지 상가, 아파트 화단 잔디밭 등등 어디서든 뛰어놀던 아.. 2020. 8. 26. [낙엽더미] 제일 안전한 나의 침대 당시 내가 살던 시영아파트는 경사진 면을 깎아 땅을 다지고 단지를 세웠다. 그중에서 내가 살던 14동은 아파트 단지 가장자리에 위치해서 뒤로는 바로 경사진 면을 깎은 담이 있었다. 그리고 그 위로는 물류창고와 같은 곳이 자리했다. 2층이던 우리 집과 높이가 비슷해서 베란다에서 물류창고가 살짝 내려다보였다. 지금 생각하면 아파트 2층보다 조금 낮은 높이 정도의 담? 벽?이었는데. 당시에는 엄청나게 높은 벽과 같았다. 13동부터 15동까지 뒷 화단은 경사진 면을 깎은 높은 담으로 둘러 이어져 있었다. 그 높은 담 위로는 각양각색의 나무가 심겨 있었다. 그러니까 우리 아파트 뒷 화단에서 그 높은 담을 올려다보면 무성한 나뭇잎이 있었던 것이다. 우리 집 바로 뒤에 자리한 물류창고는 나무를 심지 않았다. 그래서 .. 2020. 8. 25. [버드나무] 닿을 것 같은 도로에는 은행나무 또는 플라타너스, 지방의 작은 마을에는 몸통이 큰 수호 나무, 공원에는 벚나무 등과 같이 장소 하면 떠오른 나무들이 있다. 내가 살던 시영아파트를 생각하면 나는 늘 버드나무가 떠오른다. 몸통이 굵고 기다란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것 같은 버드나무, 바람에 살랑살랑 움직이던 그 가지와 잎들. 버드나무는 가느다란 가지를 길게 늘어뜨리고 있고 잎도 길쭉한 모양이다. 연둣빛 잎이 익어가다 짙은 풀색이 되고 이어서 잎을 떨구면 가을, 겨울이 왔다. 길쭉한 이파리로는 피리도 불었다. 거친 잎은 두 겹이 되게 접어 입술 사이에 넣고 프~ 하고 바람을 불면 소리가 나는데. 나는 잘 못해서 늘 입술만 아팠다. 이 풀피리를 알고서는 신이 나서 엄마에게 알려주려고 이파리 몇 개 뜯어 집에 가져갔는데, 엄마는 .. 2020. 8. 24. [덩굴장미] 향기로운 오월의 오후 대학을 다닐 때, 장미농장을 한다는 선배의 말에 조금 놀랐다. 나에게 장미는 아파트 화단에서 피어나 1층 벽을 타고 아파트 입구 양 옆을 가득 채우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야생의 장미를 알고 또 꽃집에서 파는 장미를 선물하길 좋아하면서도. 정작 장미가 농장에서 길러질 수 있다는 단순한 생각은 못했던 것이다. 내가 살던 시영아파트 14동 1층에는 덩굴장미가 아름답게 피었다. 우리 집은 2층이었고 1층에는 나와 동갑내기가 있는 가족이 살았다. 사실 3층에도 나와 동갑내기가 있는 가족이 살았다. 재밌는 것은 1층, 2층, 3층 모두 딸만 있다는 것이다. 나와 동갑내기가 하나씩 있었고, 아랫집은 외동이었고 우리 집과 윗집은 딸 셋이었다. 1층 윤O네는 덩굴장미가 부엌 베란다 창 밑까지 가득 피어올라와도 그냥 두었.. 2020. 8. 23. [개나리동굴] 우리만 들어가던 아지트 담장을 따라 흐드러지게 핀 개나리는 봄을 알리는 신호다. 버드나무처럼 가느다란 가지를 늘어뜨린 개나리는 가지마다 노란 꽃을 촘촘히 피워 꼭 노란 꽃비 같이 봄을 쏟아낸다. 그러나 나에게 개나리는 무성한 잎을 가진 동굴로 기억에 남아 있다. 내 유년시절의 아지트, 14동 아파트 뒷 화단의 얘기이다. 14동과 13동 사이 조금 넓은 공터로 들어가면 뒷 화단이 나온다. 당시 시영아파트는 옛날 아파트가 그렇듯 단지가 꽤 넓었다. 뒷 화단은 13동, 14동, 15동이 이어져 있었다. 단지 가장자리에 위치했던 세 동은 뒤로는 비탈길을 깎느라 벽을 세운 높다란 담 그 위에 물류창고가 있어 외지고 또 아늑했다. 5층밖에 되지 않는 낮은 단지라 각 동마다 아주머니들은 뒷 화단에 크고 작게 텃밭을 일궜다. 그래서 주로 ‘.. 2020. 8. 19. [앵두나무] 멈출 줄 모르는 이놈들 어릴 적 나고 자란 서울 변두리의 시영 아파트는 유난히 화단이 많았다. 특히 내가 살았던 14동은 넓은 단지 외곽에 자리해서 아파트 건물 뒤로는 담벼락과 같은 비탈진 길을 깎아 벽을 세운 어느 물류회사의 담벼락이 높다랗게 자리했다. 그래서 14동은 건물 뒤로 아지트 같은, 비밀스러워 보이는 뒷 화단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동과 동 사이가 넓었으며, 다른 동도 앞보다는 뒷 화단이 넓게 형성되어 있었다. 앞으로는 아파트 출입구로 이어지는 인도가 있어서인지 내가 살았던 시영아파트는 유독 뒷 화단이 넓었다. 그리고 화단마다 과실나무가 참 많았다. 복숭아나무는 열매가 푸릇하게 열리면 다 영글지 못하고 하룻밤 새 다 사라졌다. 어른이 되어서야 경비 아저씨가 다 따갔다는 것을 알았다. 개복숭아 나무였고, .. 2020. 8. 18. [소국] 누구든 받았으면 하는 마음 내가 다닌 대학은 서울에서 1시간 거리에 있는 경기도의 소도시에 위치했다. 왕복 2시간의 통학을 자처하던 1학기를 지나 2학기에는 곧 기숙사 생활을 시작했다. 1시간 거리인데 무슨 기숙사냐 싶지만. 통학으로 뺏기는 체력도 만만치 않았고 또 20년간 살았던 서울을 나도 한 번쯤은 벗어나 보고 싶었다. 그래서 이르게 여름방학 단기 입관부터 시작하여 짧은 기숙사 생활을 했다. 여름방학 텅 빈 학교에서 할 일은 적당히 아침을 때우고, 도서관에 가거나 산책을 하거나 방학 때 학교에 남아 있는 몇몇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거나 였다. 특히 나는 주말이나 시간 여유가 있을 때 버스를 타고 도시 번화가로 다녀오곤 했다. 그곳에는 영화관과 패스트푸드점이 있어서 매미만 울어대는 여름방학 기숙사의 지루함을 달래주곤 했다. 혼자.. 2020. 8. 13. [대추나무] 나의 대추나무에 무엇이 걸렸나 시영 아파트, 내가 태어나서 살아온 곳이다. 나의 유년과 십 대는 모두 시영 아파트에서 보냈다. 시간이 흘러 오래된 아파트가 재건축을 하기까지 한 곳에서 내내 살았다. 지금도 나의 부모님은 몇 번의 재건축으로 오랜 시간 변함이 없는 건물은 성당과 전철역뿐인 서울 변두리에서 살고 계신다. 우리 집 작은 방 창문에서 뒷 화단을 보면 잘 보이는 위치에 대추나무 세 그루가 심겨 있었다. 엄마의 말로는 할아버지가 손주 셋을 생각해서 하나씩 심은 것이라 했다. 작은 방은 부모님 방이었고, 나는 종종 작은 방에 들어가 창밖 대추나무를 보곤 했다. 주변의 나무와 어우러져 때로는 대추나무를 못 찾기도 했으나, 엄마가 알려준 위치로 짐작하며 저것이 대추나무겠거니 하고 보곤 했다. 그건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의 일이다.. 2020. 8. 10. [개나리] 꽃이 피었네 봄이 오는 걸 제일 먼저 알리는 꽃이 몇 가지 있다. 그중 가장 쉽게 접하고 또 쉽게 눈에 띄는 꽃이 개나리이다. 나는 개나리를 보면 때 이른 2월의 봄과 할머니가 떠오른다. 어릴 적 시영아파트에 살았다. 단지가 넓고 아파트 동마다 화단이 넓게 자리해서 충분한 나무와 풀과 꽃을 보며 자랐다. 단지 화단마다 알음알음 김장독을 묻고, 미니 밭을 일구던 옛날 시절이었다. 할머니는 화단에 작은 밭을 일구며 소일거리를 했다. 할머니의 연례행사와 같은 소일거리가 있다. 아직 추위가 물러나지 않은 2월이면, 할머니는 동네 화단에서 개나리 가지를 꺾어와 온 집안에 화병을 만들어 곳곳에 두었다. 신발장 위, 거실 TV 옆, 식탁 위, 베란다 선반에. 놓을 수 있는 곳에는 죄다 앙상한 개나리 가지가 담긴 화병을 하나씩 올.. 2020. 8. 6. 어린 나이 2016. 11. 3. 꽤 오래 둥근코 구두로 구두를 샀다. 평소 신던 스타일과는 전혀 다른, 뾰족코 구두이다. 발이 크고 볼이 넓은 편이라 늘 둥근코 구두만 신어왔다. 발볼이 넓어 뾰족코는 감당할 수도 없거니와. 뾰족코가 주는 쌔-한 이미지가 좋지 않았다. H라인 스커트에 하얀 블라우스를 입어얄 거 같은 이미지. 그런데 뾰족코를 샀다. 신상이라고 했다. 작년 것보다 부드러운 가죽에, 뾰족코임에도 발에 꼭 맞았다. 발볼도 적당히 잡아주고, 구두 안에서 발가락들이 접혀있지도(?) 않았다. 발가락이 편하게 펼쳐 있었으며 심지어 편하기도 했다. 한 번도 신지 않은 뾰족코. 게다가 삐쭉 튀어나온 코에는 금장식도 붙어있어 뾰족코를 더 돋보이게 했다. 망설이고 망설이다 샀다. 이제 늘 하던 스타일 말고 새롭고 싶었다. 기분 좋게 계산을 하고 룰루랄라 가게를 나.. 2016. 11. 2. 이전 1 2 다음